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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성곽길의 밤이 지닌 뒤틀린 미학

다들 볕 좋은 낮에 수원 화성을 걸으며 평화니 소통이니 하는 뻔한 단어들을 내뱉는다. SNS에 올릴 사진 한 장 건지겠다고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는 꼴이라니. 진짜 성곽길을 이해하는 법은 남들이 다 잠든 고요한 야간, 인적이 끊긴 구간을 택해 성벽의 곡선을 관찰하는 것이다. 낮에는 그저 경치 좋은 산책로로 보일지 몰라도, 밤이 되면 이곳은 거대한 건축적 모순을 드러낸다.

성벽은 애초에 방어라는 이름의 폭력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정조가 구상한 이 성곽길이 지금은 데이트 코스나 사색의 공간으로 소비되는 현실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본다.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성돌 사이의 거친 틈새와 어둠이 짙게 깔린 치의 그림자가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한 조명으로 덕지덕지 치장한 성곽을 보며 감탄할 게 아니라,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두운 벽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물성을 마주해야 한다. 그곳에 고여 있는 시간이 비로소 관람객을 정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보통 성곽길을 따라 무작정 걷는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분석하기 위해 구간별로 등급을 나눈다. 특히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해 시야를 억지로 통제하는 구간들은 현대 도시의 개방성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 좁은 문을 통과할 때 느껴지는 답답함이야말로 수원 화성이 가진 진정한 매력이다. 이 폐쇄적인 동선은 걷는 이를 강제로 고립시키며, 주변의 잡념을 차단하는 효과를 낸다. 넓게 트인 광장 같은 곳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고압적인 밀도감이 성곽길 곳곳에 숨어 있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성벽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과 성벽 안쪽의 정적인 공간이 묘하게 충돌한다. 이런 대비는 의도된 장치가 아니겠지만, 나는 이 불협화음에서 위안을 얻는다. 정갈하게 정리된 가로수나 잘 닦인 보행로 같은 것들은 필요 없다. 오로지 낡고 단단한 돌덩이들이 만들어낸 이 비효율적인 동선이야말로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퇴행이다. 굳이 매끄러운 길을 찾으려 애쓰지 마라. 울퉁불퉁한 성곽의 높이만큼이나 당신의 시선도 충분히 굴곡져야 이곳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강서 가라오케